기려수필(騎驢隨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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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려수필(騎驢隨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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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려수필(騎驢隨筆)

기려수필騎驢隨筆은 어떤 책인가?

  

  저자 기려자騎驢子 송상도宋相燾(1871~1946)는 대한제국 말기 일제강점기에 통제가 극심하였던 때에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던 인물이다.

경북 영주시 휴천리 광승동 출생이다. 본관은 야성冶城또는야로冶爐이며 현령공파이다. 자는 성소聖韶이다. 호는 기려자騎驢子 미헌眉軒 연파蓮坡이다. 탄당坦堂 김영주金永冑와 동정東亭 이정호李正鎬선생을 사사師事하여 한문을 수학하였다.

  영남학파 거유 곽종석郭鍾錫 권상익權相翊 송준필宋浚弼 이도복李道復 김창숙金昌淑, 호남의 거유 전우田愚 등과 돈독한 교유를 통하여 항일운동의 동지가 되었다.

조선왕조 말엽은 열강침략에 대항할 수 없는 무력하여진 국가에서 의 국가관과 의 문중관 사이에서 무능과 부패로 이미 국가 자생력이 상실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선나라에 떼로 몰려든 강대국들의 전투장이 되었다. 열강들의 개화압박 소용돌이 속에서 수구사상의 선비들과 개화파의 신진세력의 대립과 갈등이 깊어만 갔었다.

한 임금이 주도하는 왕권사회에서 수구파와 개화파의 대립구도로 정부군과 의병과의 전쟁은 어느 편이 충인지 역인지 석갈리는 판도였다. 그 배면에는 일본 청국 러시아를 번갈아가며 끌어들여 의병들을 진압하는 자기소모 살상전투에 나라는 패망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사라진 국가가 되어 식민지가 되었다. 양서류문화에서 친일파가 없었다면 침략자들은 식민지 정책을 감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뼈아픈 역사를 후대에게 물려주었다.

역사학에 조예가 깊어 영남유생들이 의병활동과 순국상황을 문필보국文筆報國하라는 권유로 길을 나섰다. 일제에게 국권 피탈된 1910년 경술국치 이후로 부터 1945년 광복시기 까지 혼자 전국 각지의 수많은 독립애국지사들을 직접 만나보거나 그 유가족, 또는 친지와 지인들을 탐문 방문하여 그 사적을 기록하였다. 그 당시의 신문과 기타 자료도 수집하여 함께 편찬한 책이다.

  죽장망혜竹杖芒鞋, 괴나리봇짐을 걸머지고 걸어서 관서이남 지방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책이다. 한문체로 기록한 기려수필騎驢隨筆이다. 이른바 독립지사 탐방기록문이라고 하여도 좋을성싶다. 단군 이래로 최초의 개인기자? 기려자 송상도 지사의 시대정신과 삶이 농축된 기록서이다.

특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여러 지방의 구국운동 상황을 직접 수록하였다. 다른 의병자료에서도 볼 수 없는 귀중한 의병활동상황 자료들이 많이 채록되어 있다.

207명에 대한 약전이 기록되어 있다. 순국한 열사 66, 자결 등 순절이 52명이다. 사대부이외에도 신분차별 없이 평민 내시 노비 무당 포수 여성은 물론, 중국인까지 포함되어 있다. 현지답사를 통하여 채록하였기 때문에 당시 항일투쟁의 실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문헌이다. 일제식민지시대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는 특징이다. 역사학자로서 유교적 안목에서 서술하였다.

  광복이 될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걸어 다니기로 결심하였다. 늙어서 기력이 소진하면 목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길에서 눈을 감기로 마음을 굳혔다.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글방書堂과 예정 방문지에서 기식하며 독립 운동가와 그 친지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유랑자처럼 떠돌아다녔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해진 두루마기는 넉마가 되었어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영남선비들과 약속도 지킬 방법이며 일본총독부와 일제부역자들이 모르게 오직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를 전하려는 일념뿐이었다. 일제에게 붙잡혀도 괴나리봇짐에 들어있는 한문체 글이 해박한 고사를 넣어 난해하게 기록되어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럴 때마다 독립군 암호로 오해하여 모진 구타에 시달렸다. 유학자의 붓으로서 일제에 항거한 그의 올곧은 삶의 철학결정체이다.

  대한말기 의병활동의 사적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요인 및 친일파들을 저격했던 안중근 윤봉길 강우규 이봉창 등의 사적 등이 있다. 그밖에 조직단체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919년의 3,1독립운동, 1926년의 고려혁명당 사건, 1926년의 6,10만세사건을 비롯하여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 등에 관련된 단체 및 사건에 대해서도 서술되어 있다. 특히 순절의 선비들이 도덕지향 세상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며 눈을 감았던 사례들도 있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하고 그 충은 백성을 향하여야한다.’ 라는 이순신장군의 잠언을 의병들은 가슴에 공감하며 순절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선비정신의 안설로서 국가관을 설명하였다.

해외에서 활동한 지사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누락되기도 하였다. 감춰진, 무명의 독립지사들의 활동상황이 일부 빠진 것이 유감이다.

내용은 1866(고종3) 병인양요 때에 순절한 이시원李是遠의 사적으로부터 소급하여 시작하였다. 여기에 관련된 등장인물들을 합치면 대략 500여 명이 넘을 것이다.

붓으로 쓴 필사원고(기록지) 55책의 정고본과 그 외에 일부 정리되지 않은 원고가 있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있다.

그의 아들 송인혁宋仁爀이 보관해오던 것을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료총서韓國史料叢書2권으로 국판 434쪽의 단권을 한문 활자본으로 편찬하여 발행하였다. 세상에 알려지게 한 계기이다.

  한족 명나라가 멸망한 뒤에 만주족 청나라로 역성혁명이 이루어졌다. ‘기려도사는 당나귀타고 명나라말기 충신의 사적을 수집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행적을 본 따서 롤 모델로 삼았다. 그 연유로 선배독립지사들과 의논하여 호를 기려자騎驢子라고 지었다.

영남 유학자 권상익權相翊의 서문과 저자의 집필 방향성 기준을 설정하는 원범례 및 권말에는 저자의 발문이 있다.

근대사에서기려수필의 위상은 한국사료 총서1권인 매천야록梅泉野錄백범일지와 비견되는 근대 식민지를 극복하려는 역사과정의 귀중한 사료이다.

서양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있다면 동양에는 중국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있다. 대한나라에는 김부식의삼국사기三國史記와 몸소 직접 찾아다니며 기록한 기려자 송상도의 기려수필騎驢隨筆고려사』 『조선왕조사』『중국사90147책을 필사본으로 남겼다. 물론 시대적 배경과 영역은 다르지만 사관 철학은 대표적 위상이다.

35년 이민족의 질곡에서 신음하며 피 흘린 강토가 되었다. 그럼에도 반일지사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항일운동을 하였던 결심이 바로 조국광복의 역사관으로 조명할 위대성이다. 본질과 원형을 역사관 철학에 담아 시대 현상성에 저항한 문필보국文筆報國정신은 후세들에게 정명주의 유림문화의 표상을 일깨워주는 교훈이다. 현상성에 얽매이며 도덕성 불감증에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치관 철학에 경종이 된다면 기려자 송상도지사의 고난의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1986년 건국포장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1987년 영주에 기려자 송상도지사 추모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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